로마신화의 미네르바는 그리스의 아테나 여신이다. 평생 결혼하지 않은 순결한 처녀로 묘사되는 미네르바는 지혜의 여신이자, 전쟁의 신이다. 모든 관념마다 신격을 부여했던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전쟁과 지혜를 함께 하나의 여신에 부여한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세상의 모든 지혜를 결국 생존의 문제에 쏟아부어야 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삶과 죽음의 문제, 전쟁이야 말로 지혜가 총 집결되어야 했을 것이다.

지혜는 흔히 한두 명의 영웅적 이야기속에서 존재한다. 대중들은 적어도 지혜와 관련된 부분 만큼은 스스로 매우 겸손하다.  대부분은 스스로에겐 대단한 지혜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영웅이 지혜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스스로 자기 지혜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가끔 없지는 않다. 이들은 자기가 뭘 모르는 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논할 가치가 없다. 아무튼 대중들은 전쟁과 같은 위기속에서 더욱 지혜를 갈구한다.

인터넷은 전쟁을 염두에 두고 군사목적으로 시작되었다. 핵전쟁이 터져도 두절되지 않는 통신시스템을 고안해낸 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을 파괴하는 인류의 자해행위인 전쟁 때문에 인류의 모든 지적 자산이 총결집되는 인터넷이 탄생한 것이다.

이제 그 인터넷은 전세계의 지식과 여론이 결집되는 아크로폴리스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인터넷에는 두 가지의 피가 흐른다. 하나는 지혜의 피요, 다른 하나는 전쟁의 피다. 인터넷으로 보는 구글어스가 테러에 활용되는가 하면 인터넷에서 집단지성으로 백과사전이 만들어지고 한다.

그런데, 지금 인터넷은 전쟁터이다. 수직적이고 직접적인 현실권력과 수평적이고 간접적인 가상권력의 전쟁터다. 안타깝게도 이 전쟁터에 지혜의 여신은 없다. 태생적으로 핵전쟁에도 끊기지 않도록 고안된 인터넷을 어떻게든 차단하고 진압하려는 어리석은 권력이 있다.

이들은 법과 공권력, 권위로 무질서를 바로 잡겠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또한 조그만 반대나 이의조차 제기하지 못할 정도로 집단의 정서에 휩싸인 일방적인 권력도 있다. 이들은 익명의 대중속에서만 은거하려 한다. 한쪽은 지우라고 하고, 한쪽은 도배를 한다. 결국 한 사내가 붙잡혔다.

비극은 그 사내는 그저 한 블로거였을 뿐이라는 점이다. 이름없는 한 명의 블로거가, 한명의 국민 개인이 자기 뜻을 맘대로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에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가 현실 권력을 향해 날 선 반대의견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집단의 정서와 논리에 홀로 맞서는 외로운 왕따라 할지라도, 인터넷에서는 소중하게 다뤄주어야 한다. 그 블로거 한 명의 의견이 살아서 지혜의 빛을 발할 때, 인터넷은 집단의 전쟁터가 아닌 지혜의 우물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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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임문영

인터넷경제를 제외한 경제분석은 미흡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로 시작되었다는 미국의 경제위기가 세계적 경제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경기부양과 신용확대 등 각국의 조치가 세계적 협조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끔찍한 금융위기를 맞이한 2008년 올해는 DOS가 만들어진 1981년으로부터 약 30년, 인터넷이 널리 이용되기 시작한 1990년으로부터는 약 20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20~30년 동안 컴퓨터의 확산과 인터넷의 연결로 [지구촌]은 거의 동시에 의사소통을 하고,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지구두뇌]가 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가정집 안방에서 해외의 주식시장을 들여다보고 투자를 실행할 수 있고, 각국의 주요 경제지표가 즉시 모니터에 떠오른다. 전세계와 우주를 마우스 클릭만으로 인공위성의 눈으로 둘러볼 수 가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었다면, 첨단 금융공법이라고 하는 각종 파생상품들이 그렇게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고 엄청나게 거래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지구상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그렇게 즉각적으로 금융과 경기에 반영될 수 있었을까? 전통적인 경기지표에는 잡히지 않는 재택근무자들, 사회 간접 비용들, 생산수단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최근 해외에 서버를 두고 1조 원대의 도박을 하게 한 일당이 붙잡히기도 했다. 수천, 수만 가지의 고화질 동영상과 음란물들이 해외 서버를 통해서 거래되기도 한다. 이런 규모의 자금들은 국내 어떤 경제적 통계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도박과 음란물 등 국내에서 허용되지 않은 컨텐츠로 인한 자금의 해외유출은 어느 정도일까? 게임 아이템의 국제적 거래와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의 포인트, 보너스 등 유사화폐도 우리는 규모를 알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금융위기를 단순히 이전의 금융위기들과 동일하게 봐서는 안된다는 앨빈 토플러의 주장은 지극히 타당성이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오늘의 위기는 미국 부동산의 가격 폭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집값만으로 이번 재앙이 이런 지구적인 재앙으로 번지게 되었다고 하기엔 너무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실제로 우리가 보는 세계적 금융위기는 사상 초유의 것이라고 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전통 경제학자와 정책결정권자들의 시각은 여전히 기존 대응방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컴퓨터 안에서는 전세계로 연결되는 사건들이 매일 벌어지고 있는데, 일부 전문가들의 눈에 비친 컴퓨터는 그냥 그자리에 있는 컴퓨터일 뿐인 것이다. 인터넷경제에 대한 실체가 보이지 않는 점에서, 또는 그 실상을 잘 모른다는 점에서 상당부분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한때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지구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 때문에 2000년을 맞이하면서 Y2K 같은 밀레니엄 버그라는 공포가 지구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다행히 Y2K공포는 과장된 것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지식과 정보가 빛의 속도로 공유되고 축적되는 IT의 특성상, 새로운 위험은 더욱 가공할 만한 것으로 다가올 수 있다.

Y2K 공포는 호들갑 떨면서 겁내던 우리가 8년이 더 지난 지금, 더 강력한 네트워크와 고성능으로 수많은 정보가 연결되고 있는 인터넷이 가져올 [위험사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분석하지도 못하고 있다면, 지금의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은 여전히 단편적인 것에 불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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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임문영

IPTV사업에 대한 성공여부가 논란이다. 이미 DMB사업과 위성방송 사업 등에서 엄청난 적자를 경험한 뉴미디어 산업의 전례가 있어서 부정적인 시각도 많다. 인구 5천만의 조그만 나라에서 언어적 장벽이 분명한 방송미디어 사업이 과잉이라는 부정적 인식도 있다.

그래서인지 IPTV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한다고 보기보다는 기존의 케이블TV 시장을 대체해 나갈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케이블TV와 서비스 형태상 유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IPTV 비즈니스는 여러가지 점에서 다른 기회를 갖고 있다고 본다.

첫째, IPTV는 유료가입자 시장을 이미 확보한 통신회사들에 의해서 추진되고 있다. DMB방송이나 위성방송의 경우 무작위 대중을 대상으로 유료방송영업을 시작해야 했다면 IPTV는 이미 인터넷회선을 사용하고 있는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영업이 시작된다. 그래서 이미 preIPTV시장에서 200만 가까이의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IPTV는 중소규모 중계유선사업자들이 각 지역단위로 할거하던 케이블TV초창기와는 다르다.  IPTV는 전국적 단위의 통신망을 구축한 대형통신회사들에 의해서 추진되고 있으며, 투입자금의 규모도 초기 케이블TV들과는 다르다.

셋째,  IPTV는 지상파나 위성방송, 케이블 방송등이 운영하는 시간단위 편성 개념과는 획기적으로 다른 VOD 서비스를 갖고 있다. 기존 케이블TV 시장과 위성방송 DMB방송은 시간편성이 곧 컨텐츠의 가치를 결정하는 방송개념이었던데 반해서 IPTV는 지상파 중계를 제외하면 대부분 VOD방식의 컨텐츠를 이용자가 선택한다.

이런 방식은 인터넷서비스를 제외하고는 시청자에게 새로운 경험이다.  IPTV는 인터넷의 불법 P2P보다 오히려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넷째, IPTV는 기존 방송산업계에서만 벌어지던 뉴미디어들과는 환경이 다르다. 현 정부는 방송을 산업으로 보고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IPTV는 신문, 통신, 인터넷 회사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시대에서 등장한 새로운 서비스라는 점에서 기존 방송사업자들끼리만 경쟁하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경쟁방식을 가져온다. 

인터넷+전화+VOD의 새로운 패키지상품 마케팅 등이 바로 그런 차이를 보여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문과 통신, 인터넷이 IPTV사업을 위해 연합할 수도 있다.

다섯째, IPTV는 기존 방송컨텐츠가 방송 그자체의 형식만으로 운영되어왔던 것에 반해, 게임, 쇼핑, 홈뱅킹, 설문조사, CUG 서비스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같이 갖고 있다. 케이블방송이 홈쇼핑이나 게임중계서비스 등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처럼, IPTV가 가져올 기존 방송과 다른 개념의 새로운 부가 서비스들은 새로운 수익원의 기대를 높여주고 있다.

근본적으로 방송산업의 경쟁력은 콘텐츠에 달려 있다. 그러나 IPTV는 몇차례 나왔던 새로운 방송 미디어가 아니라, 방송 그 이상의 무엇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만일 IPTV가 성공한다면, 그 이후 지상파 방송을 포함한 방송산업의 패러다임은 급격하게 재편될 것이다.  IPTV가 기존 방송의 부록페이지를 장식할 지, 새로운 미디어의 첫 페이지를 장식할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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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임문영

무한도전은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TV오락물이다. 1박2일 등 비슷한 종류의 프로그램들이 나중에 나와서 모두 인기를 얻고 있다. 이 프로그램들의 특징은 바로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

녹화 방송이긴 하지만, LIVE 방송이나 다름없는 프로그램 포맷이 인기의 비결이라고 한다. 살아있다는 것. 그것은 인터넷에서 정보가 얼마나 자주 갱신되고 있느냐 하는 것과 비슷하다. 새로운 것이 자주 제공되고, 사람들의 흔적이 자주 남는 사이트가 바로 살아 있는 사이트이다. 인터넷의 속성상 24시간 항상 접속되어 대화하는 미디어로서, 살아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한 선택 기준이다.

뉴미디어 시대에도 여전히 지상파 방송사의 콘텐츠가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신뢰를 구축해온 지상파 방송사의 브랜드 이미지도 있겠지만, 지상파는 항상 살아있는 새 것만 방송한다는 관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케이블 방송은 재방송, 지상파는 새방송이라는 고정인식이 부지불식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콘텐츠의 원류는 모두 그렇게 살아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인터넷이 모든 것을 다 빨아 들인대도, 여전히 영화는 극장에서, 드라마는 TV에서, 책은 서점에서 먼저 소비를 하게 된다. 인터넷은 그 다음 시장이다.

인터넷 안에서도 최근 UCC 방송은 동영상 클립 등을 보여주는 곳보다 살아있는 방송을 보여주는 아프리카 같은 서비스가 점점 더 인기를 얻는 추세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이 전 세계적인 축제가 된 것도 LIVE 방송이 가능한 미디어의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 마치 냉동과 운송 기술의 발달로 원양에 사는 참치가 세계적인 횟감이 되고 있는 것처럼….

지난 촛불 시위때도 하루에 한번 발간되는 신문보다 바로 현장을 직접 보여주는 인터넷 생중계가 인기를 끌었다. 가공된 정보의 왜곡과 지루한 포맷에 이미 식상한 독자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정보는 좀 더 빨리, 좀 더 직접 전달되는 쪽으로 진화한다. 이메일 하나 보내놓고 기다리는 문화가 이제는 직접 메신저 채팅도 모자라 휴대폰 문자도 동시에 보내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24시간 항상 새로운 정보를 고쳐 담고 있는 매체가 그래서 가장 강력하다. 휴대폰, 메신저 등이 나날이 발전해 가는 이유이다.

지속적인 정보의 자극은 휴대폰 사용자에게 [팬텀 바이브레이션] 같은 착각을 만들어 낼 정도가 됐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메신저 프로그램에 LIVE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예사롭지 않다. 디지털 카메라에도 LIVE VIEW가 중요한 기능이 됐다.

갈수록 늘어가는 미디어들은 마치 항상 새로운 물이 끊임없이 흘러 나오는 샘을 찾아 다니듯이 지속적이고 살아있는 콘텐츠를 구하고자 한다. 바야흐로 살아있는 콘텐츠가 대접받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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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임문영

故 최진실 씨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항상 밝고 또랑또랑했던 그녀의 웃음을 기억한다. 자살이라는 충격적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 믿어지지 않았다. 극단적 선택이 옳은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받았을 고통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악성 루머와 악플만이 그녀를 죽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악플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댓글은 매우 특이한 표현수단이다. 인터넷의 글은 대체로 글이라기 보다는 말과 같다. 감정이 그대로 살아있고, 쓰이는 표현도 구어체다. 가볍고 쉽게 지워지며, 집단화한다. 이에 반해 갖는 글자, 활자는 논리적 이미지를 가지며 진지하다. 같은 의견도 말로 하는 것과 글로 쓴 것의 느낌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악의적 댓글인 악플은 더 심한 상처를 받는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칭찬하는데 소극적인 반면, 욕설을 하는데는 나름대로 논거가 있을 뿐만 아니라 부지런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직접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그래서 이와 같은 인터넷의 폐해를 막기 위해 새로운 규제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오는 것 같다. 이번 사건이 준 충격이 워낙 컸고, 그동안 수많은 악플들의 만행들을 보아온 사람들이 공분하면서 이 제안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러나, 실명제나 사이버 모욕죄 등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상 이미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는 각 언론사의 뉴스사이트에는 가장 심한 악플들이 난무한다. 좌우로 나뉘는 정치적 싸움이나 연예인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더욱 심하다. 심지어는 악플도 아주 정치적이고 교묘해지고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스타나 정당을 오히려 치졸할 정도로 극렬 비난함으로서 반대적으로 동정 여론을 만들기도 하고, 반대하는 정당을 극단적으로 맹종하는 듯 행동해서 대다수의 반감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악플이라는 폭력성은 개인의 비윤리성과 익명성 때문만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통합과 비전을 상실한 데 따른 공동체의 퇴행적 자기분열 모습 가운데 하나이다. 가정에서도, 안되는 집은 형제간에 서로 싸우고 헐뜯기 일쑤다. 잘되는 집은 온 가족이 힘을 모아, 미래의 비전을 만들어간다.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월드컵과 올림픽을 응원할 때에는 악플이 설 틈이 없었다.

요즘처럼 모든 뉴스가 부정적이고 사회적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공포와 좌절감은 악플을 더욱 만들어 낸다. 사람들을 독하게 만든다. 경제는 위기에 몰리고, 경쟁은 치열해지며, 갈등은 치유되지 않고 커지기만 한 사회에서 악플을 단지 개인의 윤리문제만으로 몰아가는데는 한계가 있다. 또한 기존 언론들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수록, 루머는 힘을 얻는다. 건강이 약해지면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듯이... 이치는 같다.

물론, 엄연히 악플을 다는 행위와 악성 루머를 만드는 행위는 개인의 윤리문제다. 그러나, 최소한 이를 해결하려는 공공적인 노력은 보다 근본적이어야 한다. 선진국이 되면 침뱉고 휴지버리는 기초질서 위반사례도 줄어든다. 침뱉는 사람을 처벌해서 선진국이 된 것은 아니다. 네티즌의 개인적 윤리 못지 않게 국가는 더 밝은 비전과 통합을 제시해야 한다. 언론은 악질적인 루머보다 강한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그것이 진실이다.

故 최진실. 그녀의 이름이 진실이었다는 것을 새삼 생각해보자. 사회적 분노감에 밀려, 또다른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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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임문영

'광개토대왕비 보다 못한 전자기록의 보존성'

고구려의 웅대한 역사를 말해주는 광개토대왕비는 414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무려 1천600여 년 전이다. 6 미터가 넘는 이 비는 그 오래된 풍상을 겪고도 의연하게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세월의 이끼와 바람, 사람들의 손을 타서 일부 훼손된 부분도 있으나, 그 오래된 역사를 감안해보면 장구한 보관력을 자랑한다.

일부 비문 내용에 이론이 계속되고 있으나, 바위 위에 새긴 글자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누구나 쉽게 바로 볼 수 있다는 보편적인 접근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역사는 문자의 기록으로 남고, 그것을 우리는 후대에 전할 수 있다.

오래된 책은 가끔 볼 수 있지만 전자기록물은 그냥 버려졌다

이에 반해 정보화시대의 정보화 결과물들은 개인의 하드디스크와 CD, 또는 몇 단계의 전문 백업시스템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광개토대왕비와 달리 컴퓨터를 이용한 여러 작업들의 결과물은 보편적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나의 자료를 읽기 위해서는 그 자료를 만드는데 동원되었던 컴퓨터 사양과 OS, 그리고 이를 작업했던 프로그램 버전 등이 모두 갖춰져야 가능하다. 물론 전문적인 자료의 백업들은 프로그램 유형이나 버전 등으로부터 독립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이 마저 OS 버전과 시스템 사양 등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

실제로 인터넷이 대중화 되기 전 15 년 동안, 지금의 장년층의 정보화 공간이었던 PC통신 시절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PC통신 서비스도 중단되었고, DOS라는 운영체제와 286 CPU에서 작동되었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만들어낸 콘텐츠가 설사 전자기록매체 형식으로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전문적인 작업을 하지 않으면 읽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정에서 오래된 책은 그대로 남아 가끔 펼쳐볼 수도 있는 것이지만, 오래된 프로그램 CD나 데이터는 한번 열어보지도 못하고 진작에 쓰레기가 된지 오래다.

PC통신서비스는 지금의 30, 40대들 수 백만 명 이상이 참여했던 초기 정보화 시대의 서비스이다. 이때의 문화기록(최초의 워드프로세서에 대한 동호회원들의 반응, 최초의 웹브라우저에 대한 토론, 사이버 공간에서의 개인의 글에 대한 책임과 의무 등에 대한 의견, 디지털로 처음 썼던 소설과 문학모임의 작품 등)은 이제는 모두 구하기 어렵다. 기껏 신문이나 일부 단체의 프린트물, 백서 형태의 인쇄물에서 흔적만 볼 뿐이다.

"정보화공간 데이터의 체계적인 기록, 보존위해 힘써야"

정보화 공간은 인쇄물처럼 제한된 지면 때문에 잘 정리된 기록이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공간의 자유를 만끽하는 데이터들이 가치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그냥 쌓여 있기 마련이다. 오로지 최신 버전의 프로그램과 최신 업데이트된 댓글과 자료만이 대우를 받게 마련이고 그렇게 대우받았던 정보들은 이내 새로운 버전이 나오게 되면 곧장 쓰레기 데이터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환경 속에서 유의미한 보관과 기록이 체계적으로 이뤄질 리 만무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사이버 르네상스를 경험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지식을 축적하고,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중한 경험이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보존되고 축적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거대 스토리지 시스템 속에서 흘러간 쓰레기 데이터로 처분되고 있는 것일까?

정부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그러나 이미 수 천만 명이 참여하고 있는 이 새로운 세계의 기록과 보존을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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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임문영